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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신화와 옹이 박힌 토박이들의 삶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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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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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jpg
용두암 ⓒ비짓제주

 

나는 서둘러 용두암과 용연을 둘러보았다. 저녁 무렵에는 반짝이는 놀이시설과 호텔 그리고 높다랗게 쌓아올린 탑동매립지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둠에도 잠들지 못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도/잠들지 못하는 제주바다야,/ 숱한 배반으로/ 쫓기고 떠밀려 온 세월을/ 이 밤도 울부짖는 바다야”(양중해 - 잠들지 못하는 바다)
 
제주의 어른들은 무슨 일이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뺄라진추륵 허지 말라(잘난 척 하지 마라).” “곤 밥(흰 밥) 먹은 소리 허지 말라.”라는 말을 흔히 했다. 왜 그랬을까? 제주 민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소리 한번 쳐서 죽고, 나서서 죽고, 혼자 뛰어가다 죽고, 사람들에게 싸우자 하다 죽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제주민들의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의 눈길도 어쩌면 죽음의 역사를 통해 내면화된 집단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아침 일찍 애월읍 항파두리를 찾았다.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맞서 싸우던 곳이다. 강화도, 진도를 거쳐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제주에 들어온 김통정은 귀일촌에 토성과 석축으로 내외성을 쌓고, 애월포에 목성을, 하귀포에 군항(軍港)을 세웠다. 성의 규모는 외성인 토성의 둘레가 6Km 가량 되었고, 성 안에 백성들을 살게 했다. 여.몽연합군의 맹렬한 화공(火工)을 맞아 항전하다 함덕포가 무너지고,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자 김통정은 남은 병력만을 이끌고 한라산에서 싸우다 자결하고 만다.
 
김통정의 죽음은 고려에서 항몽세력의 뿌리가 완전히 뽑힌 것을 뜻한다. 고려 정부의 수탈과 지방관의 가렴주구에 시달려왔던 제주 민중은 김통정 세력에 협조하면서 반정부, 반외세의 기치를 함께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패배한 영웅으로 만들었고, 몽고의 마목장이 들어서며 제주 민중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김통정은 애월면 고내리의 고내본향당본풀이를 비롯한 6편의 무가 속에서 탐라의 생산물에 욕심을 부리다 세 장수에게 죽은 것으로 그려졌다. 항파두리 토성 일대에는 살맞은돌, 돌쩌귀, 장수물 등의 전설로 당시의 역사가 남아 있다. 
 
다시 차를 돌려 북제주군 구좌읍 쪽으로 향했다. 김녕사굴과 만장굴을 찾았다. 제주에는 이외에도 협재굴, 쌍용굴, 소천굴, 황금굴, 빌레못굴 등 세계적인 용암동굴이 많이 있다. 만장굴은 13Km나 되고 석주, 종유석 등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고고학상 가치가 높은 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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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 ⓒ비짓제주

 

김녕사굴은 S자형의 동굴로 세 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뱀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이 굴 속에 살던 커다란 뱀은 매년 큰굿을 하고 처녀를 희생으로 바치지 않으면 곡식밭을 휘저어 흉년이 들게 했다.

 

이 즈음 서연(徐憐)이라는 판관(判官)이 부임하여 군졸과 함께 그 뱀을 창검으로 찔러 죽였다. 서판관은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다 뱀신의 복수로 파선당하여 고기밥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뱀이 나왔겠는가? 조선시대 관리들이 유교 이념을 앞세워 제주의 신당을 파괴하려는 데 대한 민중의 저항 의식이 설화화된 것이리라.
 
이곳 김녕굴당에는 뱀신인 궤네깃또 신이 모셔진다. 바다를 건너 들어온 백주또 할망이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토착신인 소천국과 만나 일곱 자식을 낳아 길렀다. 사냥을 해서는 먹고 살 길이 없어 농사를 짓는데, 소천국은 밭 갈던 소까지 잡아먹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여덟째 자식을 낳아 기르던 백주또는 오백 장군의 딸을 첩으로 두고 살던 소천국을 찾아갔다.

 

그런데 소천국은 고기를 굽고 있었고, 그 모습에 화가 난 백주또는 아들 궤네깃또를 무쇠상자에 넣고 동해 바다로 띄워버린다. 궤네깃또는 용왕국의 막내딸과 결혼하고, 강남천자국에서 공을 세운 후 제주섬으로 들어온다. 그 모습에 무서워 도망가던 백주또와 소천국은 죽게 되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당신이 된다. 형들도 모두 죽는다. 궤네깃또는 궤네기에 좌정해 사람들이 일년에 한 번씩 통째로 돼지를 바치면 마을을 튼튼히 지켜주는 신이 되었다. 뱀신에게 돼지를 바치는 본풀이의 내용이 앞서 본 설화를 낳게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뱀신을 모시는 곳으로는 송당본향당, 대정광정당, 내도본향당, 표선 토산당, 차귀당 등이 있다. 그리고 일반신 본풀이인 칠성본풀이는 집안의 풍요를 가져오는 뱀신인 칠성을 노래한다. 지금은 많이 흐려졌지만 이렇듯 뱀 신앙은 제주도민의 생활 속에 깊숙이 살아 있었다. 제주도처럼 뱀 자체를 신앙화하면서 체계화한 곳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현길언의 「김녕사굴 본풀이」는 김녕사굴에 얽힌 위 설화와 칠성 본풀이를 혼합하여 흥미롭게 쓴 소설이다. ⑥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대혁1.jpg
글: 오대혁(시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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